전설의보컬 프레디 머큐리(Freddie Mercury)

보헤미안 랩소디라는 영화가 공전의 힛트를 기록하면서 최근 다시 그룹 퀸(QUEEN)에 대한 관심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직장인 밴드에서 보컬을 하면서 항상 프레디 머큐리는 넘을 수 없는 벽이자 존경하는 뮤지션이었는데요. 이렇게나마 많은 사람들에게 다시금 회자되는걸 보니 레전드는 레전드라는 것을 다시한번 생각하게 합니다. 



20여년전 카세트 테이프 시절 테이프가 늘어지도록 퀸의 음악들을 들었지만 시대가 흐름에 따라 잊혀져가는것이 매우 안타깝기만 했었는데 어느세 영화와 함께 전설적인 보컬리스트 프레디 머큐리가 다시금 세상의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오늘은 프레디 머큐리라는 보컬리스트와 그의 가창능력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프레디 머큐리 - Freddie Mercury  유년시절

프레디 머큐리는 1946년 9월 5일에 태어났습니다. 모두들 그가 영국사람인것으로 알고 있을텐데요 사실 그가 태어난곳은 탄자니아의 잔자바르 입니다. 원래 이름은 파로크 불사라 였다고 하는데요. 아버지가 무슬림이었다고 하네요. 하지만 그의 고향인 탄자니아에서 무슬림에대한 탄압이 시작되자 가족이 모두 영국으로 망명하게 되었고. 이름을 영어식으로 프레데릭 불사라로 개명하였다고 합니다. 



학창시절 인도의 뭄바이에서 기숙학교에서 생활을 하였는데요. 이때 그의 별명이 Freddie 였다고 하니 그 이름의 시초가 학창시절이지 않았을까 합니다. 이미 그시절 헥텍스라는 밴드를 결성하였는데 당시 그는 보컬이 아닌 키보디스트였다고 합니다.






프레디 머큐리의 음악활동   

1960년대 그는 리버풀에서 주로 활동하는 그룹 Ibex에서 리드 보컬로 활약하고 있었는데요. 70년대 들어 그룹 스마일을 결성하면서 퀸의 멤버인 기타리스트 브라이언 메이와, 드러머인 로저 테일러를 만나게 됩니다. 


이후 1971년 베이시스트인 존 디콘이 합류하면서 현재의 퀸 멤버가 모두 모이게 됩니다. 사실 이당시 프레디 머큐리는 다른 멤버와 함께 trident studio라는 레이블과 계약을 할 예정이었는데요. 이를 파기하고 현재 멤버들과 함께 Queen 이라는 그룹을 결성하게 됩니다. 또한 팀을 결성함과 동시에 그의 성이었던 불사라(Bulsara)를 현재의 성인 Mercury로 개명을 하게 됩니다. 



1974년 EMI와 계약후 첫 발매한 1집 앨범 Queen이 영국 앨범차트 24위에 오르며 가능성을 타진한 그룹 퀸은 1975년 4집 나이트 앳 디 오페라로 영국 앨범차트 1위를 기록하게 되며, 그 이름도 찬란한 보헤미안 랩소디로 영국싱글차트 1위, love of my heart 등을 연달아 히트 시키면서 세계적인 명성을 얻게 됩니다. 그해 보헤미안 랩소디의 홍보를 위해서 뮤직비디오를 촬영하기도 했는데요 이는 당시의 음악계에서는 신선한 충격을 주며, 뮤직비디오 라는 개념을 도입시키기도 했습니다. 






1976년 5집 부터 1980년 8집까지 네 장의 정규앨범을 발표하고 영국 싱글차트 2위를 기록한 Somebody to love와 We a the champions, crazy little Thing called love, Another One bites the dust등 무엇하나 빼놓을 수 없는 모든곡들을 히트를 치게 됩니다. 


1980년대 들어서는 퀸의 활동을 쉬어가면서 영화 제국의 종말 의 사운드트랙을 맡아서 참여하는등 다양한 방면에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하였구요. 1981년에는 아르헨티나,브라질,멕시코 등의 중남미 지역의 투어를 돌면서 그들의 입지를 공고히 하는데 힘을 썼습니다. 그해 영국의 글램락의 대부인 데이비드 보위와 공동으로 발매한 싱글 Under pressure를 발표하면서 다시한번 영국싱글차트 1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하기도 했습니다. 


데이비드 보위(오른쪽)


1984년 11집 The works, 1986년 12집 A kind of magic을 연이어 출시하면서 다시한번 메가히트를 기록하구요. 수록된 곡 Radio gaga, I want to break free, One vision, A kind of magic 등은 모두 싱글차트 3위안에 들어가면서 그룹 퀸 그들만의 성을 만들기에 충분한 세월을 보내게 됩니다. 


프레디 머큐리의 죽음  

영원할거 같던 퀸의 행보는 1991년 11월 23일 프레디 머큐리가 스스로 본인의 병을 인정하면서 막을 내리게 되는데요. 사실 이전 1986년 10월 영국 언론은 프레디가 HIV바이러스 검사를 받았다고 보도를 했습니다. 에이즈 감염을 의심한다는 의미였는데요. 당시 영국의 The Sun지의 기자인 휴 위토우가 그에게 직접 질문을 하였지만 프레디는 부인했다고 합니다. 후일담이지만 그의 파트너인 팀 허튼은 1987년 4월 말 경 에이즈감염을 최종적으로 진단받았다고 합니다. 


퀸으로서의 마지막 영상물인 These are the Days of Our Lives의 뮤직비디오에서의 그의 모습은 그의 건강이 얼마나 악화되었는지를 알수 있었습니다. 이미 노랗게 변한 그의 왼쪽눈과 수척해진 모습은 이미 병세가 많이 악화되었음을 나타내고 있었습니다.


결국 프레디는 1991년 11월 23일 유언과도 같은 메세지로 본인의 병에대해서 인정하는 발표를 하게 되는데요 그가 이 발표를 한지 24시간만인 1991년 11월 24일 에이즈로 인한 기관지 폐렴으로 세상을 떠나게 됩니다. 


그를 죽음에 이르게한 에이즈 감염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논란이 많았었는데요. 가장 유력한것은 그가 동성애자였기 때문이라고 하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그가 본인의 성적 취향을 숨겼다고하지만, 사실 그는 본인이 동성애자임을 스스로 인정하기도 하였습니다. 




그가 어떤 죽음을 맞았던 분명한것은 그는 위대한 보컬리스트 이며, 음악에 대한 열정과 보컬이라는 본연의 능력에 대한 부분은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프레디 머큐리의 마지막 공식석상의 모습 - 1990년 브릿어워즈


그가 사망하자 1992년 4월 20일 런던의 웸블리 스타디움에서는 프레디 머큐리의 추모콘서트가 열리기도 했고요. 여기엔 로버트 플랜트, 엘튼 존, 조지 마이클, 익스트림, 메탈리카 등 전세계의 내로라 하는 아티스트들이 참여하기도 하였습니다. 


1995년 퀸은 프레디 머큐리가 참여한 마지막 앨범인 Made in heaven 을 발표하는데요. 이 앨범은 1995년 영국 앨범차트 1위를 기록하였으며, Heaven For Everyone은 당해년도 영국싱글차트 2위, A Winter's Tale은 영국 싱글차트 6위에 오르는 성적을 기록하게 됩니다. 


그의 죽음과 함께 프레디머큐리의 퀸의 활동은 1995년 이 앨범으로 마지막을 맞게 됩니다. 


프레디 머큐리의 보컬적 역량  

말해 무엇하나 라고 할수 있지만, 궂이 그의 보컬로서의 역량을 따진다면 중음이 매우 강한 독특한 락 보컬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물론 이는 저의 개인적인 견해일 뿐임을 미리 말씀드립니다. 음성만 들었을때는 바리톤에 가깝지만 폭발적인 성량과 4옥타브에 근접한 고음은 완전한 테너음성이라고 보아도 무방할 정도입니다. 


개인적으로 생각하는 프레디 머큐리의 보컬로서의 가장 큰 장점은 그만이 가지고 있는 개성과 감성이 넘치는 보이스 컬러에 더해진 끝을 알수 없는 성대의 힘이라고 할수 있을거 같은데요. 음이탈을 두려워했다면 보컬이 되지 않았을거라고 했던 그의 말만큼이나 그의 보컬은 거침이 없습니다. 이는 라이브 공연에서도 아주 잘 드러나는데요. 


아주 탄탄한 기본기에 더해진 타고난 그의 성대의 힘은 흔히 말하는 노력하는 천재의 전형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습니다. 어떤 보컬이든 노력은 할것이고, 엄청난 노력 위에 얻어지는 것이 안정된 발성과 저음,중음,고음을 부드럽게 넘나들며 이 모든것이 안정된 호흡위에서 이루어지는 일련의 결과물들입니다. 


하지만 단 한가지 절대적으로 바꿀수 없는것이 바로 보이스 컬러인데요. 





아직도 우리가 프레디 머큐리를 그리워하고 그의 음성을 그리워하는것은 아마 그 만이 가질수 있는 따뜻하면서도 감수성을 자극하는 그의 멋진 보이스 컬러가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때로는 애절하게, 때로는 섹시하게, 때로는 날카롭게 묵직하게 모든 노래의 표현을 그만의 음성으로 아주 적절하게 잘 녹여냈기 때문에 퀸의 음악또한 잘 다듬어진 기본위에 프레디의 목소리가 정점을 찍을 수 있지 않았을까 합니다. 


그의 몸 또한 이런 파워풀한 그의 보컬로서의 역량을 뒷받침하기에 타고난 부분이 아닐까 합니다. 프레디 머큐리는 항상 꼿꼿한 자세를 유지하고 있는데요. 올바른 자세에서 가장 좋은 발성이 나오는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는것 입니다. 또한 흉부가 발달된 것으로 볼때 흔히 말하는 큰 울림통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아주 강한힘을 가지고 있는 그의 성대가 큰 울림통을 만나 더욱더 큰 시너지 효과를 나타내는게 아닌가 합니다. 


프레디 머큐리를 그리워 하며  

그가 세상을 떠난지 약 25년이 지났습니다. 현재 퀸은 다른 보컬과 함께 활동을 이어가고 있는데요. 사실 프레디의 빈 공간을 메울수 있는 보컬은 어디에도 없다고 봅니다. 프레디의 음성을 따라하고, 그의 스타일, 포즈를 따라하는 사람들은 많으나 여전히 그를 대신할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저역시도 퀸을 알았을때 프레디는 이미 이 세상에 없었는데요. 


프레디가 사망하기 전 자택에서 찍힌 사진


항상 날씨가 쌀쌀해질때 쯤이 되면 생각나는 그의 보이스는 여전히 저에게는 가슴을 뜨겁게 하고 그리워 하게 합니다. 서두에서도 말씀드린 것 처럼 영화로 다시 찾아온 프레디 머큐리를 보면서 그가 얼마나 위대한 보컬이었는지를 알 수 있게 되어 너무나 반가운데요. 다시 올 수 없기에 너무나 특별하고도 멋있는 그의 목소리가 더욱더 그리워 집니다. 



위의 사진은 현존하는 프레디 머큐리 사진중 가장 마지막 사진이라고 일컬어 지는 사진인데요. 그가 사망하기 전인 1991년 9월에 파파라치에 의해 촬영된 사진이며, 이 사진은 그가 사망한 이후에 공개되었습니다. 수척해진 그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마음 한켠이 짠해오지만, 그가 보여주었던 많은 모습들을 생각하면서 다시한번 그를 추모해 봅니다. R.I.P Fredd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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